사진단상.

태도.

엠씨우퍼 2010. 11. 29.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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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순간부터
사진에서 회화의 모습을 발견했고 사진을 회화,
즉 그림을 대신할 대안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8년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사진은 내게 가장 소중한 무엇들 중 최상위
하나가 되었으며 평생 놓지 않을 내 모습으로 삼기로 했다.

  아날로그 사진이 디지털 사진으로 급변하던 시절 사진을 처음
접했으며, 그 때문에 나는 모든 과정이 빠른 디지털로 사진을
시작한 일명 디카족이다.
디지털은 빨랐고, 간편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은 자와 보는이 와의 소통도 빠르고 간편했으며
누구나 할 수 있을 만큼이나 쉬웠다.

 

  동호회를 가입했고, 사진지식을 여기저기서 귀동냥으로
혹은 책에서, 혹은 찍으며 체득했다.
유명하다는 작가의 사진집을 사고 모으며, 보았다.
멀리서 한다는 사진전도 큰 차비를 들여 다녀오기도 했으며
누군가의 팬이되기도 했다.
  유명작가들의 사진을 좋아했으며, 그들의 과정을 존경하게 되었다.
나 또한 그들처럼 사진을 찍어가길 원했다.

  책에서 본 지식보다, 귀동냥 지식이 더 정확했으며
귀동냥 지식보다, 스스로 수만컷씩 찍고 수십번씩 마딱드린
체득적 지식이 더 정확했다.
이론은 이론일 뿐, 그것이 사진을 만들어 주진 못했던 것이다.




디지털.
그 빠른 처리과정과, 보여주는이와 보는이의 빠른 의사소통으로 인해
준비되지 못한 아마추어들이 많이 생산되었다.

  얼마전에 통도사에 가서, 큰 사진기를 손에들고 있는
아마추어 작가를 보았다.
그의 바지 뒷주머니엔, 작은 물뿌리게가 달려 있었는데
직감적으로 그것의 용도가 무엇인지 알았다.

  아, 저사람은 꽃을 찍으러 다니는 모양이다.
예감에 정답을 제시하기라도 하듯
그 사람은 근처의 꽃앞에 다가가 물뿌리게를 꺼내들었다
칙칙칙.
  꽃에 물을 분사 시키고, 물방울로 아름답게 빛나기 시작한
꽃을 몇컷 찍고 그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것이 눈살이 찌푸려졌으며, 그 사람의 태도에 큰 실망을 했다.
분명 잘못된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날씨가 맑았으며 햋볓이 좋은 초가을의 더위가 아직은 가시지 않은
그런 날 이었다.

  자연상태에서 이슬이 맺히는 시간이 아닌, 대 낮에 그 꽃은 물 세례를 받은것이다.
물방울이 자연증발 하기도 전에 그 꽃잎의 물방울은 돋보기 역할을 하게 되고, 그로인해
꽃잎은 타 들어간다. 그에게 사진은 남았을지 몰라도, 그 자리엔 꽃이 남아있지 않게될 수도 있다.

  지난 몇년간 밖을 떠돌면서 무수한 아마추어 사진가를 만났고 보았다.
아마추어 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내가 찍는 대상에 대한 경외심이나 존중을 갖춘 아마추어는 그리 많이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들은 다분히 결과 우선적으로 행동했으며, 그렇게 치장했다.

  꽃밭을 휘젓고 다니면서, 꽃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 했으며
온 숲을 휘젓고 다니면서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떠들었다.
그리고 그 앞에 자신은 한없이 작은 피조물인양 포장했다.
  과정은 알 수 없는 결과 위주의 인터넷 사진문화가 이런 아마추어들을 대거 생산 해 냈다.
대상에 대한 진중한 태도나 존중이 결여된 아마추어 작가들은
자신들이 그 대상을 짓밟아 죽이는지도 모른체 행동한다.




  얼마전 신문기사에선, 어떤 벽화마을에 그려진 천사날개모양의 벽화가,
지워졌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 벽화를 그린 작가가, 직접 그곳에가서 그 작품을 손수
지웠다는 기사였다.
  이유인 즉슨, 그 마을에 그려진 벽화가 유명세를 타면서 수많은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마을을 찾았고, 밤낮없이 촬영을 하는터라 소란을 피웠다.
떠들썩한 촬영이 오래도록 이어지자, 그에 피로를 느낀 마을 사람들은 그 벽화를 지울것을 요구했다.
결국 그 벽화는 그린이의 손에 의해 지워졌다.

대상을 존중하는 마음이 결여되면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자문 해 봐야한다.

  그들은 그곳이 그 마을 사람들이 주거하는 주거공간의 일부임을
깨닫지 못한것이다. 결과만이 중요 했기 때문에, 그 과정이
어떠한들 개의치 않은것이다. 사진한장이 중요했지
  그 사진을 찍기위해 자신이 어떤 마음가짐, 어떤 대상에 대한 태도를 지녀야 했는지 중요치 않은것이다.
그것들에 대한 충분한 사고가 없었고 하지도 않았다.

결과는 아름답고, 그것을 논했으나
그 과정이 지저분한 아마추어들을 두루 보았다.
그들의 손에, 행동에, 많은것들이 사라졌다.

높은 장소가 차단되었다.
꽃 군락지가 사라졌다.
아름다운 벽화가 지워졌다.
어떤 새는 집을 잃었다.
.
.
.

이러한 모습을 수년째 보면서  느낀것이 있다.

  그 결과가 어떤것을 말 해도 좋으니, 그 과정의 진중성이
더 중요하다는것을 .

  자신이 만든 결과물에 대해, 자신이 그것에 대해 충분한 사유를
글로써, 말로써 혹은 행동으로 써 증명 해 보일 수 있는지를.

 

  최근 또 다른 내 모습의 방편으로 커피를 시작하면서,
위의 생각들을 커피에 적용시켜보기 시작했다.

  나는 화려한 맛을 내고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들을 휘어잡는 것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사진이든 커피든
그 사람이 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진중성, 경외감, 그리고
대상에 대한 존중.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행위자의 행동.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진은 이런것 입니다.
커피는 이런것 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제 사진은 이렇게 이야기 하고자 했습니다.
제 커피는 이렇게 표현 하고자 했습니다.

 

그에 대한 충분한 사유.

 

그런 철학 말이다.
그런 태도 말이다.

 


그런 사람이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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